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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이야기

잘난남자 주변에는 ㅁ이 많아서 문제다?

by 알피네(al_fine) 202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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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팅에서 연구원 남자친구가 생겼다. 훈남이며 20대에 박사학위를 취득, 고연봉에 안정적인 연구소.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사람이 교양도 있고 여유도 넘친다. 행복한 연애를 지속하던 중, 100일이 지나자 남자친구는 연락도 줄고 만나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정하던 말투도 온데 간데 없다. 다른 여자가 생긴걸까? 그는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일이 많고 지친 것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불안하다.


  내 블로그는 분명히 투자공부 블로그인데 사실 다른 주제의 글들이 더 인기가 많다. 그 중에서 연인과의 문제에 대해서 쓴 글이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꽤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신기한 마음에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 먹진 않겠지? 오해하지 않고 아 이럴수도 있구나 하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잘난 남자'가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부분을 가진 남자. 세속적인 의미의 잘난 남자는 '학벌이 좋고, 직업이나 직장이 좋고 돈을 잘 벌며 외모도 괜찮은 남자'일 것이다.(그냥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할 거 같다. )

제목의 퀴즈를 풀어보자.

'잘난 남자 주변에는 ㅁ이 많아서 문제다. ㅁ은?'

 

주로 나오는 답변은 '여자'다. 잘난 남자니까 주변에 여자가 많이 꼬이고 그래서 문제가 많이 생기겠지?!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의견은 좀 다르다. 바로 알려주면 재미가 없으니 힌트를 더 주겠다. 

  • 1. 잘난 남자 주변에는 이것이 너무 많아서 잘난 남자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
  • 2. 잘난 남자는 주변에 이것이 많은 것을 사실은 꽤 자랑스러워한다.
  • 3. 잘난 남자는 주변에 이것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항상 불안해한다.
  • 4. 잘난 남자는 사실은 연인보다 주변의 이것을 더 의식하는 면이 있을 수 있다.



  잘나서 살기 편하겠다고? 사실 그 옆에서 잘 살펴보면 잘난 남자들이라고 딱히 행복하지도 않다. 나는 그 이유가 주변에 잘난 남자가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잘난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흔히들 말하는 전문직, 대기업남들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라. 회계사라면 여의도나 강남, 변호사라면 강남이나 일산, 법원 근처, 고위공무원이라면 여의도나 세종시, 교수라면 대학들이 주로 모여있는 곳, 의사라면 큰 병원 단지에 몰려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다람쥐처럼 몰아져서 경쟁하고 쳇바퀴 돌듯이 끊임없이 고강도의 노동을 한다. 

 #SCEAN2

 처음에 이 직업, 직장을 가졌을 때 뿌듯하고 기뻤다.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이것을 얻어냈다.  초봉도 세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한구석에서 피어오른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도 다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주변의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걸 알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 경쟁에서 굴욕감을 느껴봤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성과 압박이 심하다. 파벌이 갈리고 나는 양쪽 선배들에게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선택을 강요 당한다. 힘들게 공부해서 여기에 왔는데 뭔가 3D, 반복노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무는 많고 머리 써야하는 부분이 많은데 막상 그리 권한이 크지도 않다. 하... 다른 부서 누구는 알고보니 건물주 아들이었다. 어느 회사 아들이었다고 한다. 고과는 어떻게 해야 하지? 올해 성과급은 얼마가 나올까? 어제도 3시간 잤는데 오늘은 아예 밤을 새야 할 것 같다. 아... 여자친구한테서 카톡이 왔다. 요즘 내가 다정하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한다. 혹시 힘든일이 있다면 자기한테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이걸 어떻게 다 얘기하지? 여자친구 앞에서 그 동안 잘난척은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와서 이것저것 다 힘들고 때려치고 싶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부모님도 연인도 나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 머리가 아파온다.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고 답장해야겠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잘난 남자는 안 그래도 힘드니 냅두고 케어해주어야 할까? 서운한 건 하나도 이야기하지 말고? 정답은 없겠지만 일단, 그 남자를 위해 헌신하고 서포트해주고 응원해주기 위해 하고 있는 노력들은 잠시 멈추는 게 좋다고 본다. 오히려 그게 더 그들에게는 압박감이나 부담감, 내게 뭘 바라는 게 있어서 하고 있는 투자로 비춰질 수 있다. 연인으로서 기본적인 지지나 응원, 가벼운 서포트나 배려는 당연히 해야겠지만 무작정 그를 기다리거나 물심양면으로 살뜰히 보살피고, 그가 연인으로서 특별히 뭘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항상 배려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그가 언제든 힘든 점이 있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좋지만, 언제든 내가 그를 기다릴 것이고, 영원히 그를 메인에 두고 나는 내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권태기가 오고 감정은 식었지만 없으면 아쉬우니 옆에 계속 두다가 막상 결혼하기는 싫어져서 오래 사귄 후 놔준다고 나오거나, 딱히 나쁘지 않으니 책임감에 결혼했지만 큰 애정없이 결혼생활만 쇼윈도처럼 지속하는 사례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자료나 근거는 당연히 없다.)

 

   그들은 자부심이 넘쳐나는 한편 주변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압박에 시달리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을 해결하려면 잘난 남자 스스로가 자신의 힘듦이 주변에 잘난 남자가 너무 많이 때문이라는 걸 인정하고 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주변의 가족, 친구, 연인이 뭐라고 말하고 뭘 해주면서 힘을 내라고 해도 스스로 느끼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몇 년동안 유행인데,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아존중감도 되지만 자기존재감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N번방 사건 조사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일탈계'라는 것이 이슈로 불거졌는데 이른 이수정 교수님께서는 '자기 존재감'으로 해석하신다. 이와 관련해서 너무 좋은 인터뷰 영상이 있었는데... 비공개가 되었다... ㅠㅠ

  내가 전 연인들과 만나면서 정말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잘난 남자들은 자존감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힘든 일이 있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다며 확신에 찬 다정함을 보여주었고, 특유의 자신감 있는 표정도 있다. 그런데 작은 실수라도 본인이 하게 되면 풀이 죽거나 인정하기 싫어하거나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종종 주변의 친구나 형, 동생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낮추어 말하했다. 양가감정에 그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에게 있어 '자기 존재감'은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제대로 충족받지 못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어디에서라도 그 자기 존재감을 채우기 위해서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을 봐주고, 자신을 욕망해주는 일탈계에 빠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영상을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영상 링크가 있다면 제발 댓글 좀 달아주셨으면 좋겠다. 내 기억이 틀렸다고 반박해주셔도 좋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자기 존재감이 100퍼센트 충족된 청소년이, 어른이, 사람이 있을까? 어려서부터 학업 경쟁에 내몰리고, 취업경쟁에 내몰리며 온갖 매체에서 아름다움, 건강, 부, 연인관계마저 이상이 끊임없이 제시되어 개인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환경에서? 

 앞서 이야기했듯, 잘난 남자들, 소위 말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벌, 학력, 직업, 직장을 가진 남자들은 유년기와 20대를 바쳐서 얻어낸 것들에서 자기 존재감을 제대로 뽑아내지도 못하게, 그들끼리 몰아진 환경에서 일한다. 그들은 그 집단에서 나오거나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나 정도면 괜찮지. 열심히 살았지. 나 정도면 능력있지.'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오랜 시간 노동하는 만큼 주로 그들과 동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자기존재감을 느낄 시간이 매우 짧다. 또한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구조이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반도체를 혼자 온전히 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작디 작은 반도체 안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만 다루게 된다. 노동의 결과물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도 일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서 지나치게 짧기도 하다. 

 그래서 전문직, 고위공무원 남성들이 더 자극적인 쾌락을 좇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일탈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는 건 지극한 상식이지만 도대체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다 충족이 안 될까에 대해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나 또한 내가 취득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친척들이나 부모님 친구들을 만나면 몹시 칭찬을 받고 친구들은 네가 무슨 걱정이 있냐고 하지만... 사실 나 스스로는 전혀 그 메리트를 못 느끼고 있었고 입사 첫 해에 이미 몹시 지쳐서 아무런 보람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직장을 옮기면서 연령대가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첫직장에서는 젊은 사람들(그리고 그 중에서 나보다 경력 많고 능력 있으며 성실하기까지한 사람들)과 일해서 자존심이나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많이 났었지만 지금 부서에서는 내가 연령대가 높은 분들께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해서 알려드리고, 연령대가 높은 선배님들께서는 내게 인생이야기, 직장생활, 여러 절차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딸처럼 손녀처럼 잘 알려주시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 별 거 아닌 걸 알려드렸는데 그 분들께서 너무 기뻐하시고, '자네가 우리 부서 브레인이네'라고 이야기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면서도 정말 그런가? 싶으면서 너무 기뻤다. 

 나는 가만히 혼자 뿌듯해하며 생각을 하다가, '아 이래서 조직 내에서의 다양성'이 중요한 거구나. 다양한 인종들의 입학비율을 설정한 것이 위헌이 아니라는 미국 대법원 판결이 정말 맞는 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잘난 사람 순으로 잘라서 일정 집단을 구성하는 것이,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관점에서 보면 공정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 집단 안에서 구성원들은 행복하지도, 창조적인 힘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그저 착한 척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내가 집단 내에서 개성있는 사람이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걸 구성원들이 인정해준다는 감각은 너무너무 소중하고 지치지 않고 일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의, 내 옆의 남자가 아무리 잘나보여도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남자일 뿐이다. 그들을 멋있게 보고, 인정해주는 눈빛을 보여주되 마음 속에서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큰 기대를 품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다. 

 

잘난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느라 힘든 내 사람에게, 너는 정말 잘난 것이 맞는데 잘났기 때문에 주변도 잘나서 그게 잘 보이지 않는 거라고, 밝은 낮에 달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담담하지만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고 나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즉,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있었으며 살아남기가 힘들어 피로함을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나 또한 네가 사회속에서 힘든 만큼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잠재력도 너 못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서울의 비싼 아파트도... 호텔도 다 작다. 사람은 더더더더더더 작아보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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