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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이야기

갖고 싶은 것이라도 생기길 바랐던 무기력증

by 알피네(al_fine) 2020. 5. 24.

2018년 9월 5일에 썼던 일기다. 나는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수험생이자 대학교 4학년이었다. 대학교 3학년 말부터 우울증, 무기력증, 번아웃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3년 정도 이런 감정 때문에 고생을 했다. 불면증, 신체화가 너무 심했을 때 정신과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았고, 딱 2주 정도 복용하니 몸이 괜찮아져서 그 이후에는 좋은 기회에 대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33회기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금은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있다.) 부끄러울 수 있는 일기지만 내가 읽고 힘을 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님의 글처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익명으로 공개해본다.

2018년 9월 5일

오랜만에 갖고 싶은 게 생겼다. 사실은 그저께도 다이소에서 예쁜 펜을 사긴 했었다만. 뭔가 공들여서 갖고 싶은 거. 그래서 노력하게 되는 게 갖고 싶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일상이 너무나 무미건조해서 하루하루 힘이 빠져갔다. 인생이 녹록치도 않은 주제에 무슨 그런 여유를 느꼈던 걸까. 결핍에 지쳐서인지 아무 것도 더이상 바라지 않았다. 일을 할 이유도, 공부를 할 이유도 그 어떤 노력도 하기 귀찮았다.

 차라리 뭐라도 갖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극복해 보고 싶어서 노력할 때가 더 흥미진진하게 좋았었는데. 너무 소진되어서. 이제 더이상은 왜 살아야 하지. 자꾸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러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었을까. 야속하다. 갖은 고생 끝이 번아웃이라니. 

 그래도 다행이야. 갖고 싶은 게 생겼다. 내 앞으로 어떤 여성분이 지나가는데 그 가방. 그래, 작년에 그 가방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었지. 예쁘네. 가까이서 보니 로고가 보였다. 아, 그 회사의 제품이었구나. 검색해보니, 하얀색도 있었다. 더 내 취향. 그래, 까만 가방은 많으니까. 예쁘다. 갖고싶네. 가격이 이 정도면 이제 곧 적금 만기니까... 시험이 끝나고... 그래, 면세에서 사면.... 

갖고 싶은 것이 생긴것만으로도 좀 더 스스로에게 활기가 생긴다. 폰과 컴퓨터 배경화면을 그 가방으로 바꿨다. 

동기. 뭐라도 동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그 동안 내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들은 다 극복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었던 것들만 주변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와, 6개월 동안 번아웃이었네 그러고보니. 일상들은 꾸역꾸역 헤쳐나가고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할 시험은, 의미조차 잊은채로 버려뒀고, 4년을 함께 한 애인에게 자꾸만 이별을 말하고 있다.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오늘도 안부를 묻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할까하다가 참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쉽게 사과하면 안 된다. 그가 나에게 그렇게 쉬워지면 안 되는 건데. 공을 들여야 하는데. 참고 참아서 직접 만나게 되는 그 날에,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내가 지금의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오래된 연인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내가 내 인생을 대하는 태도일텐데. 

사실 간절히 바래야할 것은 '공들여서 만들어나가고 싶은 인생'일텐데. 

지금으로서는 좀 버겁다. 조금 먼 미래를 상상하는 게. 두 달 후도 힘든 상황 ㅎㅎㅎ

일단은 작은 가방으로라도 버틸 수 있어 다행이다. 이런 걸 보면 적당히 가난해서 다행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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